월남전, 그들의 눈물겨운 김치이야기

김치 블로그/김치 스토리   -  2009/07/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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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에서의 김치 이야기. 당시 월남전에 파병되어 간 한국군에게는 잊지못할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한 가지, 김치이야기도 빠지지않고 회자되고 있는데요. 외국에 파병되어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우리 한국군들에게는 고국의 맛이 언제나 그리웠을 겁니다.

그들에게 보급되었던  C-레이션의 경우 작전용으로 나오는 미군의 비상식량으로 비스켓, 코코아, 담배, 껌, 버터, 커피 등으로 한국군 체질에는 간식 밖에 되지않았다고 합니다. 또 미국 보급품의 커다란 깡통속에 든 고기들로 여러가지 음식을 해먹었지만 푹푹 찌는 정글에서 더위먹는 한국군에게 C-레이션은 밍밍하고 느끼하게만 느껴졌겠죠. 이렇게 매일 C-레이션만 먹던 한국군은 진이 빠지기 일쑤였고, 파월 첫 해가 다 되던 1965년 말 드디어 월남 쌀 '안남미'와 된장이 보급되어 그나마 입맛을 달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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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사이트 캡처화면


하지만 한국군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불면 날라가는 안남미보다  K-레이션이었습니다. 이 K-레이션에는 바로 김치깡통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는 도중 다 쉬어버리기도 했지만 한국군에게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에게 보낸 '김치 친서'가 공개되면서 이 K-레이션의 이야기는 더욱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는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우리 군인들이 먹을 수 있게만 해달라." 는 편지입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김치편지는 국가 원수로는 너무 절절한 호소여서 짠해지기까지 합니다.

파월 초창기에는 부대에서 직접 무와 배추를 길러 인분비료를 주며 수확해 김치를 담가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김치라고 하기에는 재료들이 현저히 부족해 김치 비슷한 맛만 났었겠죠. 이렇게 김치에 대한 군인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정부는 대한식품에 의뢰해 김치 통조림을 개발하여 공급하기로 했는데요. 이게 바로 K-레이션의 출발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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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빠질 수 없는 김치


이렇게 군인들은 파월 초창기때부터 몇 년간 김치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대한식품에 의뢰한 김치통조림이 도착하기까지 한국의 맛을 너무 그리웠다던 우리 군인들. 그때 당시 통조림 기술이 없던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이미 통조림 기술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지은 무 배추 김치를 먹어야지 왜놈들이 농사지은 것을 먹을 수 없다면서 계속 기다린 것이죠.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 후 K-레이션이 공급되면서 우리군의 즐거움은 이루말할 수 없었겠죠?

통조림 기술이 시원찮아 시큼하게 익어버리긴 했어도 그 김치 덕에 없던 힘을 짜내던 우리 군인들. 그 당시 우리 군인들에게 고국의 맛과 힘을 전해준 눈물겨운 김치이야기입니다.


2009/07/09 14:25 2009/07/09 14:25

재일교포에게 김치는 곧 삶이었다

김치 블로그/김치 스토리   -  2008/01/08 10:01


오늘은 김치를 소재로 한 수필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재일교포 2세인 이연순 씨가 지은 <김치 이야기>라는 수필집인데, 이연순 씨는 일본에서 50년 넘게 김치 사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2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결혼 직후 김치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비롯하여 김치와 일본, 김치와 재일교포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연순 씨가 김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갓 끝난 당시만 해도 김치는 조센즈케(朝鮮漬, 조선 장아찌)라고 불렸고, 한국인 말고는 김치를 입에 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의 일본인들은 마늘 냄새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하는군요. 하물며 마늘에 젓갈까지 들어간 음식을 선호할 리 없었습니다. ‘조선’의 음식이라는 점도 편견에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지요.

이연순 씨는 500엔으로 김치 도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500엔으로 담글 수 있는 김치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마늘과 매운 맛을 빼고 담근 김치였습니다. 더군다나 이연순 씨는 고정된 판매 루트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담근 김치를 들고는 무작정 찾아가 세일즈하는 방식으로 장사하게 됩니다.

물론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조건 필요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가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그래도 서서히 단골집은 늘어갔습니다. 교토의 유명한 장아찌 가게와 계약을 맺어 납품하게 되는 등 점차 김치 판매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20년 만에 도매에서 소매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고, 이름도 ‘조선 장아찌’에서 ‘김치’로 바꾸어 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김치 부띠끄’를 열어 아름답고 깔끔한 매장에서 “김치에게 예쁜 옷을 입혀 시집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연순 씨는 “아무리 가난했던 시절에도 김치 없는 식탁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 그것은 김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비록 2살 때부터 일본에서 살게 되었어도 자신의 뿌리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뿌리이자 삶의 원동력은 바로 김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934년생이신 이연순 씨의 80여 년의 삶 중 김치는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이렇게, 김치는 이연순 씨에게 마치 ‘오래 입은 친숙한 옷’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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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김치가 한국인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혐오식품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는 재일교포 1세들이 겪은 고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김치는 재일교포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대명사가 바로 김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치는 이제 일본 사회에서 인기 있는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연순 씨는 이렇듯 김치가 걸어 온 길은 재일교포의 역사와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 하나 의지할 것 없는 이국 땅에서 차별과 싸우며,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하여 조금씩 기반을 쌓고, 가까스로 안정을 얻게 된 재일 코리언의 삶과 발걸음을 함께 한 것이 김치입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주요 소재는 김치지만, 재일교포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비록 같은 영토 안에서 서로 얼굴 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은 바로 문화이며 그 중에서도 음식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8/01/08 10:01 2008/01/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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